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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백수 김봉철 군이 웅크리고 써내려간 이상한 위로 《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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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0-12-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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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하거나 동정하거나 울거나 웃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김봉철은 김봉철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삼백쓰’가 있다. 성공한 삼백쓰와 실패한 삼백쓰. 김봉철은 전자다. 삼백쓰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신체와 정신, 폐쇄적인 인간관계와 한없이 낮은 자존감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삼백쓰의 모범이다.

영어 발음이 부끄러워 ‘빅맥’이나 ‘메리 크리스마스’조차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에, 모임 자리에서는 늘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고, 동료와 이웃조차 외면하는 불쌍한 히키코모리. 그가 기댈 곳은 가족뿐이지만 그마저도 수상한 과거가 발목을 붙잡는다.

문제작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전설이라 불렀다. 그럴듯한 모양새도 갖추지 못한 책에 열광했다. 그렇다. 그의 글은 시종 웃기며,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슬프다. 청춘을 엉망으로 보내는 젊은이의 지질한 초상 앞에서 독자는 모두 이유 있는 울음을 운다. 불우한 환경과 청년 세대의 좌절이 개인의 기질과 맞닿아 끝없는 한심함으로 이어지지만, 김봉철은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조금씩 나아가려 한다. 연민하거나 동정하거나 울거나 웃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김봉철은 김봉철의 삶을 산다.

서른여섯, 백수, 산다는 것, 셋 중 뭐가 잘못된 걸까

감정의 파고를 일으키는 한 청춘의 뼈아픈 방백

한 사람이 있다. 늘 구부정한 자세에, 무언가 숨긴 듯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우물쭈물 말도 잘 못하는 인간. 서른여섯 나이에 친구도, 직장도 없이 그저 집에서 반찬 투정만 하는 구제불능의 백수. 김봉철이 자비를 들여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라는 책을 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못한 그의 책을 외면했고, 또 누군가는 엉망진창이지만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끌림에 환호했다. 아무리 독립출판이라지만 낙서 같은 글에 많은 이들이 환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하나같이 롤러코스터처럼 변하는 감정의 파고를 증언한다. 가령 김봉철의 이기적이고 한심한 태도를 보며 “이런 쓰레기!”라고 분노하다가도, 이내 그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독자는 “나는 김봉철처럼은 되지 말아야지”라며 상대적 안도감과 도덕적 우위를 느끼지만, 그 감정 역시 완벽한 카타르시스에는 닿지 않는다. 무언가 불순물이 섞인 듯 알 수 없는 텁텁함이 남는다. 어쩌면 김봉철의 글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마음속 텁텁한 촉감, 그 불편한 민낯을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외된 존재가 아직 여기에 있다고 알리는 일이 곧 문학이다

진부한 보편성을 깨뜨리는 어떤 개인의 특별함

문학의 존재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단단한 통념에 균열을 내는 데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작은 구멍을 내고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외된 존재들이 아직 여기에 있다고 소리쳐 알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는 문학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다. 작품 속 김봉철이라는 캐릭터는 사회성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심한 인간 군상의 상징이다. 오해를 살까 타인의 눈도 잘 쳐다보지 못하고, 상처를 받을까 혹은 상처를 줄까, 정작 필요한 말마저 하지 못하는 사람. 쿨하고 무심한 태도를 사회성의 지표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그의 소심함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금기된 감정이다.

김봉철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다. 술 먹는 아버지와 희생하는 어머니, 매 맞는 아이로 이어지는 절망적인 가족 서사는 문학적으로 더는 신선하지 않다. 마치 보릿고개를 논하는 전후세대의 입버릇처럼 진부한 과거의 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 삼킨 ‘피해자의 지금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갈음하는 엔딩 이후의 삶에는 무관심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김봉철의 질문을 곱십어 보자. “서른여섯, 백수, 산다는 것, 셋 중 뭐가 제일 잘못된 걸까?” 정말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대답할 수 있겠는가?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곤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과,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해 장롱에 갇힌 기억과, 종로 5가 역에 버려진 기억밖에 없는 그에게 왜 이렇게 한심하게 구냐며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고통을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김봉철 자신뿐이다. 그는 다만 현실과 현실 속의 자신을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용서하는 중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불행은 거듭될 것이며 상처 또한 쉽게 아물지 않겠지만, 웅크리고 써내려간 이 작은 책을 통해 김봉철은 자기 바깥으로 다시 한번 손을 내민다.

따분하거나 초라하지 않게, 키득키득 김봉철답게

숨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미는 김봉철만의 위로법

소심한 김봉철, 지질한 김봉철, 한심한 김봉철, 아무리 놀려도 괜찮을 것 같은, 고유명사 김봉철을 읽으며 독자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학자 노명우의 말처럼 처음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기 위해, 혹은 비참한 삶에 대한 각자의 공감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의 고백이 단순한 넋두리를 넘어선 인간 공통의 감정에 닿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김봉철이라는 민낯에서 비애를 느낀다. 킥킥대고 욕을 하다가 먹먹함에 입을 다문다. 침묵 속에서 독자는 김봉철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그가 느낀 소외와 상처가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깨닫고, 그로 인해 움츠려든 소심함과 한심함을 발견하고, 선뜻 화해하기 버거운 삶의 궤적에 김봉철식 유머를 투척하는 것이다.

웃음이 없는 삶은 따분하다. 웃음 끝에 휘발되는 글 역시 초라하다. 김봉철은 따분하거나 초라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과 대면할 방법을 궁리한다. 한때 누구보다 깊은 방에 숨어 있었으나 이제는 자신의 비루함을 무기 삼아 세상과 소통하는 청춘이다. 세상에 숨고 싶은 사람들에게 김봉철은 말한다. 조금 한심하게 굴어도 괜찮으니 세상에 손 내밀어 보라고.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의 방문을 열어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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